아타리쇼크 역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타리는 1972년 놀런 부슈널이 만든 회사로 1972년 11월 퐁을 출시하면서 게임을 비지니스 영역으로
개척한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타리는 매년 판매량이 두배로 증가하면서 1980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아타리용으로 이식하면서
하드웨어 매출이 2배로 늘면서 80년도 한해 2억달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타리는 게임에 관심도 없으면서 게임으로 한목잡아보려는 업체들이 게임같지도 않은 게임들이
쏟아졌고 남의 게임을 마구 베껴 파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게임시장의 대혼란을 예고하기도 했죠
그래도 계속해서 게임시장은 성장중이었고 1982년 절정에 다르게 되는데 이때 아타리 뿐만 아니라
중권가, 소매상 모두 계속해서 성장할것으로 보고 마구 물량을 쏟아내는 버블까지 불러오게되면서
아타리는 팩맨을 1,200만개를 주문하기 까지
1982년 발매한 팩맨은 700만개라는 적지않은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500만개라는 제고부담이 이었음에도
300% 성장이라는 증권가의 예상은 더욱 버블을 부풀리고 있었죠
그리고 1982년 연말 아타리는 실적예측을 낮게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쇼크로 모회사의 주식이
폭락하면서 다른 경쟁사부터 유통사까지 줄줄이 주식이 폭락하는 아타리쇼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타리쇼크의 방점을 찍은 소프트가 가장 큰 대목인 크리스마스를 대비해 발매한
ET로 엄청난 주문량과 다르게 거의 팔리지 않거나 반품되면서 아타리쇼크가 현실화 됩니다.
1983년까지는 그래도 가정용 게임기가 여전히 팔려나갔고 게임카트리지 판매량은 더욱 늘었는데
이유는 포화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회가들이 도산하면서 덤핑판매를 시작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2년간 게임제작사 및 소비자 모두 게임을 제값을 주고 사는 사람을 모두 잃으면서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은 완전히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죠
하지만 닌텐도에서 발표한 패미콤의 슈퍼마리오로 인해 아타리쇼크로 인한 북미게임시장의 붕괴를
회복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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