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정보

그리스철학 소피스트 흥망과 쇠락에 대한 역사

틱톡2 2016. 7. 26. 16:20

그리스철학 소피스트 흥망과 쇠락에 대한 역사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활동한 지식인들의 집단의 토론문화가 고대 그리스 로마사회에

발달하였습니다.

이러한 집단을 소피스트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여러 광범위한 분야에서 서로 토론하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포인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못하게 하는것이 대세인 분위기였죠.


즉 말도 안돼는 주장이고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저 그로인한 실질적인 폐해가 우려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이 언쟁에서 승리하거나 상대를 논리적으로 혼돈에 빠지게 한다면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소피스트 라고 하며 지금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소피스트가 등장한 배경에는 아테네의 민회라는 특징에 있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시기 민회의 햘약이 두드러져 당시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민회에서 자신이 눈부시게 활동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즉 민회에서 말발이 좋은 사람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민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변론술과 수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리고 어느정도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지켜야 할것이 있기에 아무래도 말빨을 통해 이를 지킬수 있기에

어느정도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변론술과 수사학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 주변각국의학자들이 돈냄새를 맡고 이곳에 몰려들게 되죠

여기에 아테네의 높은 사람에 있는 사람들이 정계진출을 위해 해외 지식인과 친밀한 관계를 대부분 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적훈련과 품위유지를 위한 생활습관을 가질수 있어 많은 정계진출자들이 해외 지식인과의

교류를 원해 이곳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해외에서 초빙된 지식인이다보니 수업료도 비싸게 받았고 궤변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논리를 주장해 승리하는등 분위기였는데

당시 이들 지식인의 탐구목적만 보더라도 민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는것이 자신이 위대한 지식인

이라는것을 증명하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괘변이 먹히는 분위기속에 아무래도 아테네는 정상적인 방향으로 갈수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소피스트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를 꼽는데

프로타고라스는 사람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감각이 상대적이니 진로또한 사람마다 상대적일수밖에 없다라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것을 주장하였고





고르기아스는 부분부정으로 나가는 기묘한 논법의 회의론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록 존재한다 손쳐도 우리는 그것을 알수없다 비록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가 알수 있다손 쳐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수 없다" 라는 말장난을 주장했죠


즉 소피스트로 유명한 그리스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모든것이 진리" 라고 주장하고

고르기아스는 " 모든것이 거짓" 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괘변들이 남무하고 민회의 목적이 괘변이라도 논리적으로 남에게 이기면 인정받는 아테네의 실체는

아무래도 제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갈수없는 구조가 되어버리자 이에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민회를 보고 "민주주의를 세상에서 두번째로 타락한 정치형태" 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아테나가 파멸하게 된것은 아테니 민주정이 초래한 중우정치에서 초래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전기 아테네가 몰락하자 그들의 주요수입원이 없어지게 되면서 소피스트들은 몰락하게 되었지만

로마제국과 그리스가 합병하자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다시 로마제국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번성시키게 되었고

다시 로마제국이 쇠락하면서 소피스트도 함께 몰락하게되는 스토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