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독립을 위한 류큐독립운동 현실에 대해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왕조가 다스리던 땅이었다가 1872년 일본이 강제로 실시한 1차 류큐처분으로
일본의 번으로 전략하게 되었죠.
물론 일본본토는 오키나와를 자신들의 식민지국가로 곡식, 설탕등 자원 및 식량수탈을 지속적으로 뜯어냈습니다
1차 류큐처분후 17년이 지나서 2차류큐처분이 1879년 일어나면서 오키나와현으로 바뀌고 류큐왕국의 마지막 왕인 쇼타이는
일본 본토로 보내져 그냥 후작이 됩니다.
이후 류큐왕국의 독립을 원하는 완고당과 소멸을 원하는 개화당이 대립하였고 이들은 청일전쟁당시
완고당은 청나라, 개화당은 일본을 응원했는데 아시다시피 일본이 승리하죠
그러자 오키나와독립을 원하는 완고당의 세력은 밀려나게 되자 주권이라도 인정받으려고 자치권을 인정받아
쇼씨 가문이 통치하도록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도카라 열도를 미국이 통치하는 류큐지역으로 편성시켰으며 이곳 오키나와를 신탁통치 하면서
독립국으로 만들려고 했죠.. 그래봤자 미국이 중남미 나라들을 독립국으로 만들면서 경제적 식민지로 만드는것과
같은 목적이었지만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오키나와 북동쪽의 도서군인 도카라열도는 사실역사적으로 류큐왕국의 지배를 받은적인
없는 지역이며 아미도 군도 역시 과거에는 류큐왕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1609년 일본의 사츠마에게 빼앗긴 지역이기
때문에 실제로 류큐왕국이 지배를 아예 해본적이 없는 땅이거나 아주아주 오래전에 지배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일본복귀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시설에 대한 이곳지역의반발로 오키나와 도카라열도와 아마미군도를 그냥 일본에게 반환하죠
그리고 일본에게 반환한 지역이외 류큐지역은 1972년까지 오키나와 현 단독으로 구성되어 미국이 관리하는
제한된 자치를 실시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제한된 자치를 받았던 당시 오키나와현은 주일미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했고 독립운동도 벌어지게 되었는데
미군주둔으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면서 주일미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그럴바에는 그냥
평화헌법이 있는 일본으로 북귀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었죠
즉 평화헌법 아래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러자 결국 미국은 1972년 일본에게 오키나와현을
반납하죠
그런데 일본은 그대로 주일미군을 그대로 오키나와현에 주둔시키고 일본본토에서 류큐인에 대한 차별이 있으면서
하나둘씩 류큐독립운동의 명분여론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본토에서 류큐인에 대한 차별을 받게되자 독립을 요구하는 주장과 함께 테러사건도 일어나게 되는데
대표적인 테러사건으로는 1975년 황태자 아키히토 덴노가 오키나와 방문당시 화염병 테러가 있었죠
하지만 오키나와가 산업인프라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독립했다가는 주변국의 반발이 일어날수 있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전쟁의 우려도 있는 지역이다 보니 독립을 반발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중국이 역사적인 공통점을 주장하면서 오키나와에 세력을 뻗칠수도 있기 때문이죠
어찌되었든 오키나와 독립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아직까지는 독립불필요 의견이 높은 편이며
역사교육 자체가 일본본토의 역사교육과정을 그대로 배웠기 때문에 젋은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지역주민들은 오키나와 사람과 일본사람을 구분할 정도의 인식으로 일본본토에 대한 감정이
좋은편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반중감정도 커서 괜히 독립했다 중국의 속국이 될수도 있으니
그냥 지금의 일본영토가 나을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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