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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 역사 설립과 파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틱톡2 2016. 11. 2. 17:28

코닥 역사 설립과 파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코닥은 1892년 미국에서 창립된 다국적기업으로 1882년 필름의 초기형태를 만들어 내고 1883년 감광필름을 만들어

내면서 상용화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전의 사진기는 크기도 크고 무게도 꽤 무거워 휴대하기 힘든 구조였으며 여기에 별도 촬영장비를 옮기기 위해서는

2~3사람이 들고 가야하는 상황이었죠





그때 뉴욕 로체스터 은행 서기였던 조지 이스트만은 좀더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수 없을까 라는 고민끝에

여러 실험을 직접하면서 사업가 헨리 스트롱의 투자를 얻어내면서 상용화된 필름을 대량생산하면서

자신이름을 따서 이스트만 코닥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1887년 세계최초로 휴대형 사진기를 개발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카메라 사업을 시작했지만

당시 카메라는 대중화되지 못해 크게 코닥이 개발한 카메라와 필름에 대해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코닥을 이를 돌파하기 위해 기획된 광고에 고정투자함으로써 시장을 점차 넓혀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피스입은 코닥여성을 광고에 기용해 젋은세대중심 수요를 타켓으로 시장을 개척하게 되죠





카메라 대중화에 앞장선 코닥은 시장우위에 서면서 설립자 이스트만이 추구하던 싸고 사진찍기 편한

카메라를 판매함으로써 더욱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되죠


성공적인 경영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한 코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는데 당시 코닥의 설립자 이스트만은

독일 화학회사 견학당시700여명의 엔지니어와 화학자를 고용한것에 충격을 먹고

연구소를 설립해 지속적인 투자로 상품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당시 이스트만이 연구소 설립하면서 내린 임무는

1. 원하는것이면 무엇이든 다 연구해봐라

2. 당신의 임무는 사진술의 미래다

라는것으로 이스트만은 평생 MIT에 엄청난 액수를 기부하는등의 행동을 통해 약 100년간 코닥은 수많은 특허를 통해

이익을 남긴 회사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이후 코닥은 카메라의 대명사가 되면서 이스트만은 엄청난 부자가 되지만 그는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사회에

기부하였고 회사직원의 복지와 노동조건에 신경쓰는등 존경받는 사업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독신자였던 이스트만은 1932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더욱 진보된 필름이

개발됨에 따라 코닥은 계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며 1950년에는

카메라바디, 렌즈, 필름으로 세분화되면서 콘탁스, 라이카, 니콘, 펜탁스, 캐논등의 등장으로

카메라시장에서 코닥의 입지는 줄어들게 되지만 여전히 이스트만이 창업당시 기업철학이었던

싸고 값싸고 편리한 카메라 라는 모토로 개발된 인스터매틱 카메라에 효과적으로 대체할수 있었고

필름사업을 통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었죠

특히 코닥의 수많은 특허는 코닥이 안정적으로 나아가는데 긍정적인 요소중 하나였죠


그리고 실제 1990년 들어서 코닥은 미국 25대기업이 될정도로 모든 사업가의 귀감이 되는 기업이 되면서

미국 공학도들이 가장 취직하고 싶은 직장이 되기도 합니다.





엄청난 특허를 가지고 있는 코닥은 1975년 세계최초 디지털카메라를 만든것 역시 코닥이지만

필름시장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상용화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1981년 소니가 세계최초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화하죠


2004년 코닥은 파산설이 흘러나오다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됩니다

코닥이 파산까지 하게된것은 디지털시대로 넘어가면서 그에 대한 시대적 변화에 대해 과소평가했던 부분입니다.

그리고 실제 코닥은 그들의 특허를 MS, 삼성전자, 구글, 아마존, 애플에 팔아치우죠


그리고 재기를 노리는 코닥은 2015년 스마트폰시장에 뛰어들어 IM5 라는 모델을 출시하지만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죠

그래도 코닥은 현존하는 유일한 영화용 필름제조사로 간신히 유지는 하고 있죠